알렉산더 플레밍
알렉산더 플레밍은 1881년 8월 6일 스코틀랜드 남부 에어셔 지방의 로흐필드에서 농부인 휴즈 플레밍과 그레이스 스털링 모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플레밍은 어릴 적에 라우던 무어 학교와 다블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킬마르녹 학원에서는 2년 장학금을 받으며 기초교육과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는 런던으로 떠나 런던의 왕립 폴리테크닉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대학 공부를 위해 상선에서 4년간 사무원으로 일한 후, 그의 삼촌인 존 플레밍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뛰어난 성적으로 런던 대학교 의학부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런던 대학교의 세인트 메리 병원(지금의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906년 8월 6일에 세인트 메리병원에서 의학 면허를 취득하였으며 바로 병원의 Almroth Wright의 예방 접종에 합류하였습니다. Almroth Wright는 백신 치료와 면역학의 개혁자이며, 특히 1898년에 장티푸스 백신 개발로 유명합니다.
플레밍이 있던 예방 접종과는 매우 열정적이기는 하였지만, 당시 전체적인 연구소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습니다. 교수인 라이트조차도 개인 연구실을 갖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플레밍을 포함한 라이트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환자를 치료하여 돈을 벌어야만 하였습니다.
그 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그때 플레밍은 영국군에 입대하여 프랑스의 야전병원에서 의무장교로 근무하였습니다. 당시 그는 전장에서 상처가 썩어 들어가는 부상자들을 위해 볼로냐의 카지노에 설치된 특별 연구실에서 소독약 및 방부외과기술에 대해서 연구하였습니다.
1915년 휴가 중에, 그는 간호사 사라 맥엘로이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내성적인 플레밍과는 정반대로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녀의 쌍둥이 자매 엘리자베스와 요양원을 운영했습니다.
1918년에 그는 세인트 메리 병원으로 돌아와서 교수가 되었고, 1919년에는 왕립 의과 협회의 헌터좌교수가 되었습니다. 이후 플레밍은 면역학, 세균학, 그리고 화학요법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실패만 계속되는 소독약 및 방부외과분야에, 플레밍의 라이소자임 발견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라이소자임은 세포벽에 있는 펩티도글리칸을 가수분해 하는 항균 효소이며 동물의 조직, 침, 눈물, 알의 흰자에 들어있습니다. 플레밍은 당시 자신이 감기에 걸렸을 때의 콧물을 노란색 군체의 미생물에 첨가하였다. 그는 몇 개의 배양접시를 씻던 도중 노란색 군체의 미생물의 한쪽에 미생물이 없는 부분을 발견하였고, 그 안의 미생물은 반투명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 주위에는 분해 중인 미생물이 보였다고 합니다. 플레밍은 자신이 첨가한 점액 속에는 바로 주위에 있는 미생물을 분해시킬 수 있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 발견 이후에도 라이소자임이 페니실린보다도 더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28년에 플레밍은 세인트 메리 병원 예방 접종과의 세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과의 부책임자가 되었고 그 해에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에 발견한 생물체 내에서의 자연 방어 물질인 라이소자임의 병원균에 대한 낮은 항생 능력은 플레밍이 화학요법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페니실린에 관련된 화학요법이 의학 문제에 어떤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 자체는 이후 항생제 분야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32년에 플레밍은 페니실린에 대한 연구를 포기해 버리게 되고, 이후 페니실린 연구에 다른 연구자들에게 자신이 배양한 균주를 주는 일 정도만 하였습니다. 플레밍은 자신이 화학요법을 연구할 만한 화학적 전문성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화학요법은 심각한 감염을 치료할 만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945년에는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페니실린의 발견
1928년 플레밍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하여 연구하던 도중에 우연히 오래된 포도상구균 배양 배지에서 곰팡이 군체가 생긴 것을 발견하였고, 그 곰팡이 군체가 주위 세균의 성장이 중지되는 원을 형성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그 곰팡이가 세균들의 성장을 억제시킨 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 플레밍이 과학계에 그 발견을 발표하였을 때는 관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플레밍 자신의 논문을 제외하면 페니실린에 관한 것은 플로리와 체인이 페니실린을 치료약으로 대량 생산할 때까지 그에 대한 언급은 과학사 속에서 거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페니실린에 관한 신문기사는 매우 많아졌습니다.
플레밍이 당시 연구를 할 때에 그의 연구실은 너무 더러웠습니다. 실험실 작업대에는 항상 연구 표본과 배양 접시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1928년의 여름에 플레밍은 상처를 포도상구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배양기들을 그대로 둔 채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고, 몇 주 후 그가 다시 실험실에 돌아왔을 때, 그는 우연히 열려 있던 배양 접시 중 하나에서 솜털 형태의 푸른색 곰팡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곰팡이 주위의 포도상구균들은 모두 성장이 억제되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그 곰팡이로부터 추출한 추출물에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후로 리치 캘더의 『생명의 구원자들』이라는 책에서 창문으로부터 곰팡이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추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리치 캘더는 플레밍이 실제로 사용가능한 형태의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6년 후에 다른 작가인 루도비치(L.J.Ludovici)는 『플레밍, 페니실린의 발견자』에서 곰팡이 포자는 완전히 우연으로 플레밍의 배지에 떨어졌으며, 플레밍은 그를 발견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아주 뛰어난 천재로 묘사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플레밍이 겪었던 사건은 흔히 있는 사건이지만, 다른 학자들은 그를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관찰력이 부족하거나 호기심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플레밍에 있어서 특별한 우연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곰팡이에 의한 배지의 오염은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플레밍의 경우는 다양한 종류의 페니실린을 형성하는 매우 희귀한 페니실륨 곰팡이가 플레이트에 앉았다는 사실이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플레밍의 발견을 플레밍 이후 몇몇 과학자들이 실제로 재현해 보았지만, 40년 동안 그것은 어떤 과학자도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로날드 헤어라는 교수는 연구 결과 그는 1928년 플레밍이 곰팡이 접시에서 본 것을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로날드 헤어 교수는 플레밍의 관찰에 대한 추적 실험 결과를 1968년에 의해 발표하였습니다. 1971년에는 페니실린의 첫 임상 사용 13주년 기념 페니실린 항생물질에 최근 연구를 소개하는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그 개막 연설은 런던 임페리얼 과학기술대의 체인 교수가 맡아서 흔히 얘기되는 창문으로 들어온 곰팡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플레밍은 정말 무더기로 행운을 잡았는데, 그건 흔히들 생각하는 사건의 전모와는 거리가 멉니다. 플레밍이 관찰한 그 현상은 단순하고, 명쾌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지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속에 숨겨진 복잡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단히 희귀한 몇 가지 상황이 겹쳐야만 그런 관찰이 가능한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플레밍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의 분해는 페니실린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페니실린의 영향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생길 수 있는 자기 분해 작용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체인 교수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비이상적으로 오래 방치해 두었고, 대개 실제 치료에 쓰일 수 있는 화학요법에서의 페니실린이 세균에 미치는 영향인 세균 성장 억제 효과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극히 소수의 세균에서만 일어나는 페니실린의 세균 분해 현상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1949년 플로리와 체인을 포함한 옥스퍼드 팀은 플레밍의 업적을 “행운에 의해 페니실륨 노타툼이 실험 접시에 떨어져서 생긴 변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후에 다른 사람들이 사용 가능하도록 곰팡이를 보관해 두었다는 것 정도입니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페니실린의 활용
페니실린은 단지 최초의 항생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개량을 통해서 오늘날에도 환자 치료에 유용한 항생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좋은 효율의 투여방법과 내성 균주의 대응, 스펙트럼의 광범위화를 위해 개량하여 이용하는데 이 개량된 항생제를 페니실린계라 부릅니다. 페니실린의 대표적인 종류로는 페녹시메틸 페니실린, 벤질페니실린, 프로카인 벤진페니실린 등이 있습니다.
페녹시메틸 페니실린(penicillin V)은 경구투여용 페니실린으로 다른 종류에 비해 높은 혈중농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을 때 사용합니다. 보통 피부 감염증, 화농성연쇄상구균, 류머티즘 열, 치은염 등에 사용합니다.
벤질페니실린은 염산에 의해 불활성화되어 효과가 떨어지므로 경구투여하지 않습니다. 페녹시메틸 페니실린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 각개 조직에 대한 역가가 높아지므로 높은 항균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봉와직염, 어린이의 패혈증 등에 사용합니다.
프로카인 벤질페니실린은 프로카인 페니실린이라고도 불리며, 벤질페니실린과 국소마취제인 프로카인의 혼합체입니다.
근육주사하면 서서히 벤질페니실린으로 가수분해되며, 비교적 낮은 역가에 해당하는 항균효과가 필요한 경우 사용한다. 호흡기 감염증 매독 등에 사용합니다.
오늘날은 페니실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항생제들이 존재합니다. 페니실린은 대표적인 베타-락탐계열 항생제 중 하나입니다. 이 베타-락탐계열 항생제는 세균 세포막인 펩티도글리칸의 교차연결 배열을 망가트림으로써 세균을 죽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세포벽을 망가뜨림으로 세포를 죽이는 항생제는 세펨 계열의 항생제가 있습니다. 또한 증식을 억제하는 마크로라이드 계열,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테트라시 클린 계열, 효소 생성을 방해하는 퀴놀론 계열 등의 다른 종류의 항생제들이 있습니다.
페니실린은 원래 자연계에 있던 항생물질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물질들을 주로 이용하였지만 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런 물질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고, 구조를 살짝 바꾸는 반합성, 또 완전히 새로운 항생 물질을 합성함으로 인해서 오늘날에는 항생제의 종류와 폭이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항생제의 발전과 동시에 신체 내의 부작용과 내성을 가지는 박테리아 역시 계속적으로 진화하면서 항생제의 부작용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생제의 남용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